JaeYong Park
Research Fellow,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 Dongguk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Correspondence to JaeYong Park, wilkfire@hanmail.net
Volume 1, Number 1, Pages 13–25, January 2026.
Journal of Intellectual Property 2026, 1(1), 13–25. https://doi.org/10.?????/HNC.2026.1.1.2
Received on August 14, 2025, Revised on January 30, 2025, Accepted on January 30, 2026, Published on January 31, 2026.
Copyright © 2026 Aut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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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term ‘stubbornness’ (固執) commonly used in everyday language from a Buddhist perspective. In ordinary usage, stubbornness predominantly carries negative connotations, and Buddhism, which seeks liberation from all forms of attachment, likewise regards it negatively. This study first examines the dictionary definition of stubbornness and its usage in the Chinese Buddhist Canon, then interprets stubbornness through the Buddhist theory of mental factors (cetasika). The theory of mental factors, established after the Abhidharma period, enables more precise investigation of the mind by analyzing in detail the mental factors that constitute mental operations. Yogācāra Buddhism inherited this theory from Abhidharma and made revisions and supplements to it. This paper first examines how various mental operations arise together from the perspectives of both Abhidharma and Yogācāra theories of mental factors in cases where anger arises, while identifying their limitations. This study sought to analyze stubbornnes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theory of mental factors. While there is no specific ‘stubbornness mental factor’ that precisely corresponds to the meaning of stubbornness as we use it today, similar mental factors were found to exist. Based on this, the various mental operations that accompany the arising of stubbornness were inferred, ultimately concluding that the Yogācāra theory of mental factors provides a better understanding of mental operations than Abhidharma. Although the Buddhist theory of mental factors has complex and intricate aspects, it was considered that the categorical perspective and methodology that constitute this theory can also help analyze the suffering and anxiety of modern people.
stubbornness, citta, cetasika, five classes of seventy-five elements in Abhidharma, Yogācāra five categories and one hundred dharmas
이 글의 목적은 ‘고집’이란 말이 불교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정의되는지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불교의 심소설(心所說)에 초점을 맞추어 고집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심소설이란 이른바 ‘마음의 작용’을 카테고리로 분류한 불교 특유의 이론으로 아비달마와 유식불교에서 자세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심소설의 입장에서 고집을 알아보기 전에, 고집에 대한 일반적인 용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우리가 고집이란 말을 일상적으로나 전문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
고집은 한자어 ‘固執’으로, ‘固’는 굳어진, 단단한 등의 의미이고 ‘執’은 잡다, 움켜잡다, 지키다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합하여 “단단히 움켜잡고 지킨다.”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고집의 정의는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를 말한다. 그 용례로 ‘고집을 부리다’, ‘고집하다’, ‘고집을 꺾다’, ‘고집을 버리다’ 등이 있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no date]).
그 밖에 고집과 연관되어 ‘쇠고집’, ‘똥고집’ 등으로도 쓰이는데 이 경우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고도 여전히 우길 때를 말한다. 이 경우에는 불교식으로 ‘아집(我執)’이 지나치다 라고도 표현된다.
이처럼 고집은 대체로 부정적인 뜻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좋은 뜻으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80년 고집이 빚어낸 전통의 맛’(Naver, [no date]a), “스티브 잡스가 세계 최고의 경영자가 된 비결은 뛰어난 직관력과 통찰력 그리고 옳다고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을 가졌기 때문이다.” (Naver, [no date]b)라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원칙을 지켜 나갈 때를 ‘고집스럽다. 우직하다’라는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고집에는 자기 주장, 견해, 집착이라는 내용이 깔려 있다. 최근 뇌과학의 발전으로 고집에 대한 신경과학적 발견이 뒤를 잇고 있다. 이 경우 공통된 내용은 고집이 뇌의 전두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른바 ‘꼰대’가 되어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경우를 조사해보면 전두엽의 노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전두엽은 추리나 판단, 공감, 계획 등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데, 어려운 과제를 만나면 좌측 뇌의 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젊은이들과 달리, 노인은 활성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Donga Science, 2020). 극단적 고집이라는 증세로 나타나는 치매의 경우도 전두엽 기능의 저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집이라고 하는 견해의 고착화가 ‘신경회로의 고착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집은 일반적인 용례로부터 신경과학적 설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원에서 그 의미에 대한 검토가 가능하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불교 경론에 나타나는 ‘고집’의 정의와 용례를 간단히 살펴본 후, 고집이 일어나는 과정 및 관련 내용을 심소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 심소설의 입장에서 ‘고집’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심소설이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해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심소설은 심식설의 변천 과정에서 등장한다. 심소(心所)는 심수(心數)라고도 하며 ‘심에 속한 것(cetasika)’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심은 심왕(心王)이라고도 불리며 심소는 심왕의 신하라고도 불린다. 초기불교에서는 심소에 해당되는 것이 따로 있지 않았고, 마음[심왕]의 작용이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으로 보았다. 부파불교 초기에 심을 체(體)와 용(用)의 둘로 분류하고, ‘작용으로서의 심소’가 분리된 이후 심과 심소가 상응한다는 설까지 등장하게 된다(Katsumata, 1974, p. 336).
초기불교에는 심과 심소가 분리되지 않았고 심(心)·의(意)·식(識)이라는 표현도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니까야나 아함경에서는 심과 심소를 구분하여 나누지 않았지만 부파불교에 들어와 심소설이 나타나게 된다(Mizuno, 1964, p. 10). 즉, 초기불교에 설해지는 심(心)·의(意)·식(識)을 6식[심왕]으로 하고, 그 밖에 다른 심작용들을 몇 가지 심소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성립되었다.
북방 아비달마에서는 심소의 수를 46종, 남방 아비달마의 경우 52종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러 유식문헌에 등장하는 심소의 수는 51종, 53종, 55종 등으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51종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51심소는 6종의 큰 범주로 나뉘며(Vasubandhu, T31, 855b; Dharmapāla et al., T31, 26c), 제8식, 제7식, 제6식, 전5식 등과 그때그때 상응해서 심왕의 작용을 돕는 역할을 한다.
부파불교에서 심소설의 발전으로 심과 심소가 분화된 이후 심소는 독립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별체(別體)로 인정된다. 심과 심소의 상응설은 심과 심소가 별체라서 서로 상응해서 작용한다고 하는 설이다. 심·심소 상응설이 처음 등장하는 논서는 『잡아비담심론』(Dharmatrāta, T28)으로, 여기에는 사(事)·시(時)·의(依)·행(行)·연(緣)의 5의평등(五義平等)설이 상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상응이란 심과 심소가 항상 서로 작용하면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5의(義)평등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의 사(事)가 같다는 것으로, 상(想)과 수(受)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함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상(想)과 수(受)가 ‘상응한다’고 표현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심소’라는 구분이 따로 없으므로 심 작용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하지만, 상응설의 경우 순차적 생기보다는 상(想)과 수(受)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심·심소 상응설이 어느 정도 완비된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아비달마대비바사론』(Xuanzang, T27, 80c)이며 5의평등설을 비롯해서 여러 형태의 심·심소 상응설이 잘 정리되어 설해진다. 5의평등설은 후에 『아비달마구사론』(Vasubandhu, T29-a; 이하 『구사론』)에도 그대로 계승되어(Mizuno, 1974, p. 395), 소의(所依)·소연(所緣)·행상(行相)·시(時)·사(事)로서 내용은 비슷하지만 순서가 다르게 나타난다(Vasubandhu, T29-a).
유식불교에서 심소는 심왕소유(心王所有)의 법(法)(Fukaura, 2012, p. 197), 즉 ‘심소는 심왕에 소속되는 법’으로 표현된다. 『성유식론』 권5에서는 항상 심왕에 의지해서 일어나고, 심왕과 상응하며, 심왕에 속해있기 때문에 심소라고 설한다. 『성유식론』 권3에서는 심왕과 심소를 상응하는 법이라고 하면서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한다. ① 심왕과 심소가 연(緣)할 때 시간이 동일하고, ② 심왕과 심소는 소의(所依)의 근(根)이 동일하며, ③ 심왕과 심소는 그 소연(所緣)의 경(境)을 같이 하고, ④ 심왕과 심소는 그 사(事)를 같이 한다는 것이다(Fukaura, 2012, p.197; Kim, 2001b, p.132; Dharmapāla et al., T31). 『성유식론』에서도 『구사론』을 이어받아, 심소를 심왕의 상응법으로 보고 시(時)·근(根)·소연(所緣)·사(事)가 같다고 설한다. 다만 『성유식론』에서는 『구사론』의 5의평등 중 행상(行相)이 배제되어, 심왕과 심소는 4의평등이 된다. 그 이유는 유식불교에서 행상에 대한 정의가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식에서 심왕은 총상(總相)을 연하고 심소는 총상과 별상(別相)의 2상을 연하는데(Dharmapāla et al., T31), 심왕과 심소의 행상이 달라지게 되어 제외된 것이다.
아비달마의 심소설은 세친의 『구사론』에 잘 집약되어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심소의 종류와 심의 작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5위 75법 중 심소에만 초점을 맞추어 마음의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보자. 아비달마의 심소법은 크게 대지법(大地法), 대선지법(大善地法),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부정지법(不定地法)의 6범주로 나뉜다. 각각의 내용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아비달마 5위 75법 중 심소만을 떼어서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아비달마의 심소법(Vasubandhu, T29-a, 19a-20c)
| 범 주 | 심 소 | |
|---|---|---|
| 심소 46종 | 대지법(大地法, 10) | 수(受)·상(想)·사(思)·촉(觸)·욕(欲)·혜(慧)·염(念)·작의(作意)·승해(勝解)·삼마지(三摩地) |
| 대선지법(大善地法, 10) | 신(信)·불방일(不放逸)·경안(輕安)·사(捨=行捨)·참(慚)·괴(愧)·무탐(無貪)·무진(無瞋)·불해(不害)·근(勤=精進) | |
|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 | 치(癡)·방일(放逸)·해태(懈怠)·불신(不信)·혼침(惛沈)·도거(掉擧) | |
|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2) | 무참(無慚)·무괴(無愧) | |
|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 | 분(忿)·부(覆)·간(慳)·질(嫉)·뇌(惱)·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 | |
| 부정지법(不定地法, 8) | 심(尋)·사(伺)·수면(睡眠)·악작(惡作)·탐(貪)·진(瞋)·만(慢)·의(疑) |
아비달마에서는 심은 안·이·비·설·신·의의 전6식을 말하고, 심소는 <표 1>과 같이 대지법 등 6종으로 나뉜다. 본고에서는 46종의 심소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신 6가지 큰 범주에 대해서만 간략히 논하고자 한다. 6범주의 심소법을 통해 아비달마에서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대지법(大地法, mahā-bhūmika dharma)이란 선, 불선, 무기 등 일체의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10가지 법이다. 여기서 일체 마음에 항상 존재한다는 의미는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이 10가지 심소들이 함께 일어난다는 뜻이다.
대선지법(大善地法, kuśala-mahā-bhūmikā dharma)이란 모든 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10가지 법이다. 선한 마음에는 반드시 이 10 심소들이 함께 일어난다.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kleśa-mahā-bhūmika dharma)은 모든 염오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6가지 법이다. 염오한 마음에는 반드시 이 10 심소들이 함께 일어난다.
대불선지법(大不善地法, akuśala-mahā-bhūmika dharma)은 모든 불선한 마음에 항상 존재하는 두 가지 법이다. 불선한 마음에는 반드시 이 두 심소가 함께 일어난다.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parītta-kleśa-bhūmika dharma)은 일부 염오한 마음에 일어나는 10가지 법이다. 이 10 심소들은 함께 일어나지 않고 각각 별도로 현행하는데 이런 점에서 대(大)가 아니라 소(小)라는 이름이 붙었다.
부정지법(不定地法, aniyata-bhūmikā dharma)은 선 불선 무기의 어떠한 마음과도 일어나는 8가지 법이다. 이 8가지 심소들은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不定)이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심소설은 심·심소의 상응을 말하고 있으며, 심·심소만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심소들도 함께 일어난다[俱起]. 따라서 『구사론』에서는 선한 마음이 일어날 때 반드시 22가지 심소가 함께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에는 대지법 10가지, 대선지법 10가지, 부정지법 2가지[尋, 伺]이다. 한편 선하지 않은 마음, 즉 불선의 견(見)이 일어날 때는 대지법 10가지, 대번뇌지법 6가지, 대불선지법 2가지, 부정지법 2가지[尋, 伺]가 함께 일어난다.
한편 불선의 마음으로 탐(貪)·진(瞋)·만(慢)·의(疑) 중 하나가 일어날 때는 이 외에도 대지법 10가지, 대번뇌지법 6가지, 대불선지법 2가지, 부정지법 2가지[尋, 伺]가 일어나 21가지 심소가 함께 일어난다.
한편 불선의 마음으로 소번뇌지법으로 분(忿) 등이 일어날 때는 이 외에도 대지법 10가지, 대번뇌지법 6가지, 대불선지법 2가지, 부정지법 2가지[尋, 伺] 상응하여 21가지 심소가 함께 일어난다.
이처럼 선이나 불선의 마음이 일어날 때 6가지 범주의 심소들은 서로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비달마 심소설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이상의 심소법을 토대로 현재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대지법+대불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부정지법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분노는 소번뇌지법 중 하나이므로 이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1. 아비달마에서 심과 심소의 구기
아비달마 심소설과 같은 세부적인 분류가 불교수행의 문제가 아닌 탁상공론 같이 번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와 같이 마음의 작용을 세분하게 되면 수행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수행에 어떤 장애나 문제가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언어적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마음이 분노가 가득 차 있다”와 같은 말을 좀 더 세분하여 다져보게 되면 좀 더 마음의 작동법을 알게 되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수행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아비달마식 접근법에는 난점이 있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대지법 10가지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이와 같이 10가지의 법은 온갖 마음과 [동일] 찰나에 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고 하였다.”라고 한다. 여기서 전(傳)하여 설(說)한다는 것은 논주인 세친의 설이 아니라 오히려 세친이 비판하고자 하는 설일체유부의 설이다.
대지법 10가지가 모든 마음과 동일 찰나에 화합하여 두루 존재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세친은 대지법의 다섯 가지인 수(受)·상(想)·사(思)·촉(觸)·작의(作意)는 같이 일어나는 것에 동의하지만, 나머지 다섯 가지인 욕(欲)·혜(慧)·염(念)·승해(勝解)·삼마지(三摩地)가 같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 이유로는 위의 <그림 1>에서 분노가 일어나는 경우 대지법 중 하나로서 간택을 의미하는 혜(慧) 심소와 대번뇌지법 중 하나인 치(癡)가 같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특정 번뇌가 일어날 때 대지법, 대번뇌지법, 대불선지법이 동시에 일어나서 해당 법을 설명하는 것은 의의가 있겠지만 내적으로는 모순이 있게 된다.
실제로 세친은 자신이 저술한 유식논서인 『대승백법명문론』(Vasubandhu, T31)에서 대지법을 둘로 나누어 변행심소 다섯 가지와 별경심소 다섯 가지로 설하고 있다. 변행심소와 별경심소에 대해서는 아래 유식불교의 심소법에서 논할 것이다.
유식불교는 아비달마의 심소설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였고, 몇 가지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다. 세부 범주는 크게 변행심소, 별경심소, 선심소, 번뇌심소, 수번뇌심소, 부정심소의 6범주로 나뉜다. 각각의 내용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표 2. 유식의 심소법
| 범 주 | 심 소 | ||
|---|---|---|---|
| 심소51종 | 변행심소(遍行心所, 5) | 작의(作意)·촉(觸)·수(受)·상(想)·사(思) | |
| 별경심소(別境心所, 5) |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 | ||
| 선심소(善心所, 11) | 신(信)·정진(精進)·참(慚)·괴(愧)·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경안(輕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 | ||
| 번뇌심소(煩惱心所, 6) | 탐(貪)·진(瞋)·만(慢)·무명(無明=癡)·의(疑)·부정견(不正見=惡見) | ||
| 수번뇌심소 (隨煩惱心所, 20) | 소수번뇌심소 (小隨煩惱心所, 10) | 분(忿)·한(恨)·뇌(惱)·부(覆)·광(誑)·첨(諂)·교(憍)·해(害)·질(嫉)·간(慳) | |
| 중수번뇌심소 (中隨煩惱心所, 2) | 무참(無慚)·무괴(無愧) | ||
| 대수번뇌심소 (大隨煩惱心所, 8) | 불신(不信)·해태(懈怠)·방일(放逸)·혼침(惛沈)·도거(掉擧)·실념(失念)·부정지(不正知)·산란(散亂) | ||
| 부정심소(不定心所, 4) | 수면(睡眠)·악작(惡作)·심(尋)·사(伺) | ||
아비달마의 심소법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비달마의 대지법이 유식에서는 변행(遍行)심소와 별경(別境)심소로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변행(sarvatraga)심소는 심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심소이다. 유식불교에서는 전6식과 말나식, 알라야식 모두에 변행심소가 일어난다. 또한 제6의식에 특정 번뇌심소가 일어날 때도 변행심소가 함께 한다. 변행심소 5종이 동시에 모두 일어나는지 아니면 5종 중 일부가 선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본고에서는 변행심소 5종이 상황에 따라 전부 일어날 수도 하나만 일어날 수도 있다고 가정하기로 한다.
별경(viniyata)심소는 아비달마의 대지법에서 변행심소를 제외한 것으로 욕(欲)·승해(勝解)·염(念)·정(定)·혜(慧)를 말한다. 별경(別境)이라는 명칭은 각 심소의 인식 대상의 사(事=境界)가 같지 않기 때문에 붙인 것이다. 변행심소가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것과는 달리 별경심소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일어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세친은 아비달마에서 대지법의 혜(慧) 심소와 대번뇌지법 중 하나인 치(癡)가 같이 작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여 『대승백법명문론』에서 이를 분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선심소는 총 11종이 있는데 아비달마의 대선지법에 무치(無痴)가 추가된 것이다. 유식에서는 무탐·무진·무치를 3선근(善根)으로 묶어서 다루고 있다. 아비달마 대선지법에서 무치가 빠진 이유는 무치는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대지법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선지법에서 설하지 않은 것이다.
번뇌심소는 총 6종으로 아비달마에서는 부정지법에 속하는 탐·진·만·의가 이에 속하며, 치(=무명)와 부정견(=악견)이 포함된다. 아비달마의 대번뇌지법 중 치만 번뇌심소에 속하며 나머지 5종은 모두 유식불교의 대수번뇌심소에 속하게 된다.
수번뇌심소는 소수번뇌, 중수번뇌, 대수번뇌로 나뉘는데 소수번뇌는 아비달마의 소번뇌지법과 동일하고, 중수번뇌는 아비달마의 대불선지법 2종과 같으며, 대수번뇌는 대번뇌지법에서 치(癡)가 빠지고 부정지와 산란이 추가되어 8종이 되었다. 소수번뇌 10종은 각기 따로 일어나고, 중수번뇌 2종은 불선심이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며, 대수번뇌 8종은 잡염심에 두루 일어난다. 대수번뇌의 대(大)는 아비달마와 다르게 두루[遍] 있다라는 의미이지 함께 모두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부정심소는 아비달마의 부정지법 중 탐·진·만·의가 번뇌심소로 이동하면서 수면·악작·심·사의 4종만으로 되어 있다. 아비달마의 부정심소와 다른 점은 아비달마에서 심·사가 모든 심소가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대신 유식에서는 일어나는 게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유식불교의 심소와 아비달마의 심소법의 가장 큰 차이는 대지법이 변행심소와 별경심소로 나뉘었고, 번뇌심소에 탐·진·치와 바르지 않은 견해인 부정견(=惡見)이 포함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부정견을 살가아견(薩迦耶見)·변견(邊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금취견(戒禁取見)의 다섯 가지로 나누어 잘못된 견해가 갖는 중요성을 드러내고자 한 점이다. 이와 같은 변화를 통해 특정 번뇌를 아비달마 심소법 보다 잘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번뇌심소에 따르는 수번뇌심소를 나눔으로써, 아비달마의 대번뇌지법, 대불선지법, 소번뇌지법, 부정지법의 각 심소들이 동시에 일어날 때 나타날 수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번뇌가 일어나는 경우는 중수번뇌(2종)과 소수번뇌·대수번뇌가 함께 일어나는데 『성유식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자세히 설해진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그림 1>에 제시된 내용을 유식불교의 심소설로 재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는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는 경우에 대한 유식불교의 해석이다.
그림 2. 유식불교에서 심과 심소의 구기
유식불교에서는 변행심소 5종 중 하나 혹은 전부가 일어나고 별경심소는 작용하지 않으며, 번뇌심소 중 진(瞋) 심소만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아비달마와 다른 점이 있다.
먼저 『한역대장경(漢譯大藏經)』에 ‘고집’이 사용되는 용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디지털 대장경인 C-beta에 ‘固執’을 검색하여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았다. 현장 역의 『대반야바라밀다경』, 실차난타 역의 『화엄경』, 보리유지 역의 『대보적경』, 현장 역의 『해심밀경』, 현장 역의 『구사론』과 『아비달마순정리론』, 『성유식론』 등을 포함하여 50여 경론에는 고집이라는 표현이 ‘견고집(堅固執)’, ‘불응고집(不應固執)’, ‘하고집위(何固執為)’ 등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비달마 논서 중 현장(玄奘)역 『아비달마집이문족론』(Xuanzang, T26)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집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어느 한 무리는 자기 견해에 취착하여 굳게[堅] 고집(固執)을 일으키므로 가르쳐서 버리게 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고집은 견과 함께 쓰여서 굳게 고집(堅固執)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구사론』을 검색해보면 고집이라는 말이 한번 등장하는데 이때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의 ‘불응고집(不應固執)’이 그것이다. 『유가사지론』에도 ‘고집취착(固執取著, 고집하여 취착하다)’으로 나타난다. 『성유식론』에는 ‘불응고집(不應固執)’, ‘기재고집(奇哉固執)’ 등으로 고집과 관련된 내용이 검색된다.
이를 통해 대장경에서 고집은 거의 대부분 “자기 견해를 고집한다.”라는 의미로 쓰이며, 한자어 ‘固執’이 별도의 심소(心所)로 정의되기 보다는 단지 술어(述語)로만 사용됨을 확인할 수 있다. 아비달마와 유식문헌에서 ‘고집’의 의미를 갖는 심소는 무엇이고, 산스끄리뜨어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앞서 보았듯이 아비달마의 5위 75법이나 유식의 5위 100법을 설하는 한역경론에는 심소로서 한자어(漢字語) ‘고집(固執)’이 별도로 정의되고 있지 않다. 실제 고집(固執)의 의미를 갖는 심소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가장 유사한 심소로는 5위 75법의 소번뇌지법 중 뇌(惱)를 들 수 있다. 여기서 뇌(惱)는 산스끄리뜨어 pradāśa를 한역어로서 현장역 『구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뇌(惱, pradāśa)’란 이를테면 온갖 잘못된 일[罪事]에 대해 굳게 집착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이치에 맞는 말[諫]을 받아들이지 않고 뉘우치지도 않는다.
한편, 진제역 『아비달마구사석론』에서는 pradāśa를 불사(不捨)로 번역하고 있다.
어떠한 부류에 굳게 집착하는 것을 불사(不捨)라고 이름하니, 이와 같은 번뇌[惑]에 의해서 여실한 가르침을 바른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장이나 진제 모두 pradāśa를 굳게 집착한다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바른 말 혹은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다음으로 유식문헌인 『성유식론』에서는 뇌(惱)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5위 100법에서 뇌(惱)는 소수번뇌에 속하며 이는 아비달마의 소번뇌지법에 해당한다.
무엇을 뇌(惱)라고 하는가? 먼저 분(忿)·한(恨)이 있고 좇고 접촉하여 사납고 맹렬하게 다투고 어그러지는 것을 체(體)로 삼고, 뇌(惱)하지 못하게 장애하여 지네가 쏘듯이 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 이전의 악행을 좇아 현재의 거슬리는 연을 접촉하여, 마음이 곧 다투고 어그러져 대부분 사납고 흉하고 비루하게 거친 말을 하여, 타인을 마치 지네가 쏘듯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또한 진(瞋) 심소의 일부를 체로 삼는데, 진을 떠나 별도로 뇌(惱)의 상(相)과 용(用)이 없기 때문이다.
『성유식론』에서의 뇌(惱) 심소는 아비달마의 해석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정의한다. 아비달마의 뇌 심소가 현대적인 고집의 의미에 조금 더 가까운 반면 『성유식론』의 설명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뜻이 더 강하다. 이는 위의 인용문에서 뇌 심소가 분(忿)이나 한(恨) 심소에 이어 나타나고 체성 역시 진(瞋) 심소의 일부라고 하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성유식론』에서 현장이 번역한 뇌(惱)라는 심소는 우리가 말하는 통상적인 고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아비달마의 정의가 현대적 의미의 고집에 근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비달마의 정의 또한 일반적 의미와 고집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 이유는 불교의 심소설이 일상적 행위가 아니라, 수행 지향적인 측면에서 바른 가르침의 실천으로 바른 행위(karma)를 지향하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현대적 의미의 고집을 불교의 심소설을 통해 해석하고자 한다.
앞의 논의를 간략히 다시 정리해보자. 아비달마의 대지법 10종은 모든 마음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심소로서 언제, 어떤 상태에서나 함께 일어나므로 항상 마음작용이 일어날 때 무조건 모두가 함께 일어난다. 아비달마 대지법 총 10종이 늘 함께 일어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이미 알아보았다. 특히 아비달마 부파 중 설일체유부에서 모든 법은 각각 개별적인 실체이므로 동시에 일어나야만 한다. 그 이유는 제법이 각기 자기만의 고유한 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인식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함께 일어나야[俱起]만 한다. 따라서 만약 함께 일어나지 않고 시간적으로 차이를 두고 일어난다면 각각의 작용은 찰나생멸하기 때문에 그 작용이 일어날 수 없다. 세친은 『구사론』을 저술하면서 설일체유부 심소설에 대해 ‘전설(傳說)’이라고 언급하면서 부정적 입장을 취한 바 있으며, 유식논서인 『대승백법명문론』, 『유식삼십송』 등에서는 심소설을 수정하여 저술하고 있다. 대지법과는 다르게 유식의 변행심소 5종은 전8식 및 타 심소와 함께할 때 두루 작용[遍行]한다는 의미로서, 대지법처럼 모든 법이 동일 찰나에 함께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구사론』 심소설에 입각하여 ‘현대적 의미의 고집’이 일어날 때 어떤 심소들과 함께 일어나는지를 추정해보자. 앞서 보았듯이 고집은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가 혼재하지만 보통은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본고에서는 부정적인 고집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고자 한다.
현재의 마음속에 고집이 일어난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대지법+대불선지법+대번뇌지법+소번뇌지법+부정지법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 앞서 고집과 관련된 아비달마 심소로 소번뇌지법의 뇌(惱)를 들었으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대적 의미의 고집을 일부 포함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집=뇌(惱)로 보고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3. 고집이 일어나는 경우 동시에 일어나는 마음 – 『구사론』
아비달마의 대지법 10종, 대번뇌지법 6종, 대불선지법 2종, 부정지법 5종이 고집이 일어날 때 동시에 일어난다. 부정지법 5종은 고집과 함께 일어나는 심, 사 및 진, 만, 의가 포함된 것이다. 그런데 아비달마식 해석은 고집(=뇌(惱))이 갖는 근본적인 성격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논의했듯이 『구사론』 심소설의 가장 큰 난점은 관련 심소가 모두 동시에 구기하므로 특정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성유식론』의 심소설에 입각하여 ‘현대적 의미의 고집’이 일어날 때 어떤 심소들이 함께 하는지를 알아보자. 먼저 『구사론』과 『성유식론』 심소설의 차이 중 하나가 악견(惡見=不正見)에 대한 것이다. 『구사론』에서는 잘못된 견해인 악견이 별도의 심소로 들어가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이미 대지법의 혜(慧) 심소에 견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성유식론』에서는 번뇌심소 중 하나로 악견을 넣고 있다. 또한 악견은 세부적으로 유신견(有身見=薩迦耶見) · 변견(邊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금취견(戒禁取見)의 다섯으로 세분된다. 유식의 심소설은 아비달마의 대지법처럼 무조건 모두 생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므로, 고집이 일어날 때 함께 하는 심소를 보다 잘 추론할 수 있다.
현대적 의미의 고집을 유식의 심소설에 대입할 때 함께 일어나는 심소를 예상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은 소수번뇌의 뇌(惱)를 고집과 유사하다고 보았지만 여기서는 뇌(惱)심소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함께 일어나는 심소를 열거해보면서 고집을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해당 심소에 대한 각주의 내용을 참고)
먼저 변행심소 중에는 사(思)가 일어난다. 이 경우 별경심소와 선심소는 일어나지 않는다. 번뇌심소 중 진(瞋)·만(慢)·치(癡)·의(疑) 및 악견(惡見)이 일어나는데 특히 악견 중에서 유신견, 견취견이 함께 일어난다. 소수번뇌 중에는 앞서 살펴본 뇌(惱)와 교(憍)가 일어난다. 중수번뇌인 무참과 무괴는 둘 다 일어난다. 대수번뇌 중 불신, 실념, 부정지, 산란이 일어난다.
그림 4. 고집이 일어나는 경우 동시에 일어나는 마음 – 『성유식론』
이를 풀어보면, 무엇인가를 고집한다는 것은 1) 마음 속에 자신은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하는 생각을 갖는 것[思]이다[변행심소]. 2) 이때 자신의 고집의 근거로서 자기 자신이라는 근원적 견해[有身見]와 자신의 견해[見取見]을 갖고 있다. 고집이 일어나는 때를 보면 성내는 미세한 마음[瞋]과 교만한 마음[慢], 다른 이를 의심하는 마음[疑], 근본적인 어리석음[癡]이 그 바탕에 있다[번뇌심소]. 3) 여기에는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고[無慚]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없다[無愧][중수번뇌]. 4)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惱] 나만 옳다고 교만한 마음[憍]을 갖는다[소수번뇌]. 5) 이때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不信], 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며[失念], 마음이 산란한[散亂] 상태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不正知][대수번뇌].
<그림 3>과 <그림 4>를 비교해보면 『구사론』의 아비달마 심소설보다 『성유식론』의 심소설이 보다 고집을 잘 표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배경에는 앞서 보았듯이, 세친도 비판한 설일체유부의 제법의 동시구기이다. 아비달마식 대지법이나 대번뇌지법으로는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명확하게 분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세친은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변행심소와 별경심소를 나누었고, 번뇌심소와 수번뇌심소로 나누어 필요에 따라 심소가 작용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유식불교의 심소설은 아비달마의 맥을 그대로 잇되 좀 더 마음작용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불교의 심소설을 통해 고집을 살펴보았다. 불교의 심소설은 불교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 좀 더 자세하게 마음을 분석한 것이다. 특히 아비달마에서 심왕과 심소를 나눈 것과 심소를 6가지 범주[유식은 8범주]로 나누고, 그룹별로 일어날 것과 일어나지 않을 것을 구분한 것은 독창적인 불교의 사고이다. 실제로 선한 마음과 불선한 마음은 같이 일어날 수 없으며, 불교에서는 불선한 마음을 선한 마음으로 대치(代置)함으로써 번뇌에 물든 우리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자 하였다.
논자는 아비달마 보다는 유식의 심소설이 마음작용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식 심소설의 바탕에는 아비달마식 6범주와 정립된 세부내용이 있기에, 논자가 보기에 한층 발전된 형태의 심소설이 가능했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매우 번쇄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분석적 고찰을 통해 고집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고집스러움을 보다 현명하게 대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불교심리학과 같은 융합영역이 등장하고, 불교수행 용어 중 하나인 sati는 마음챙김(mindfulness)과 같은 범용어가 되어 인지행동치료의 필수 기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불교의 심소법을 활용하여 마음과 마음작용을 범주적으로 분석하여 심리치료의 기제로 응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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