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esub Kim
PhD, Pusan National University Sports Science, Republic of Korea
Correspondence to Heesub Kim, bansan90@naver.com
Volume 1, Number 1, Pages 1–12, January 2026.
Journal of Intellectual Property 2026, 1(1), 1–12. https://doi.org/10.?????/HNC.2026.1.1.1
Received on August 31, 2025, Revised on December 16, 2025, Accepted on January 30, 2026, Published on January 31, 2026.
Copyright © 2026 Auth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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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im of this paper is to define Taijiquan as explained in the “Treatise on Taijiquan” (太極拳論). Wang Zongyue’s treatise is an important document that shows how the Taiji–Yin–Yang theory of the Zhouyi (Book of Changes) is applied to martial practice. The content of this treatise is not a general theoretical discussion; it describes the actual principles by which Taijiquan operates. Therefore, treating its content as if it were merely a set of technical terms to be translated makes it difficult for practitioners to truly understand it. With this in mind, the present study seeks to clarify the operating principles of Taijiquan by examining its relationship to the Zhouyi, identifying the passages cited from the Zhouyi, and uncovering the meaning contained within the treatise. The text includes both direct quotations from the Zhouyi and expressions closely connected to it. The “Treatise on Taijiquan” encompasses four major themes: the Taiji and Yin–Yang foundations of Taijiquan, the bodily conditions required for its practice, the distinctions between Taijiquan and other martial arts, and the definition of what it means to “abandon the self.” Although extremely concise, the treatise explains Taijiquan through the Yin–Yang theory of the Zhouyi, the principle of not relying on instinctive or brute force, the meaning of engaging with an opponent, and the Confucian mind-method (心法). Letting go of one-dimensional instinctive strength and psychological obstinacy leads to the Confucian ideals of geukgi boknye (克己復禮, overcoming the self and returning to propriety) and sagi jongin (捨己從人, relinquishing oneself and following others). Through this paper, I hope to show that the Treatise on Taijiquan is not merely a theoretical explanation, but the fundamental program — the operating code — of Taijiquan itself.
Taijiquan, Taichi, I-Ching, Taichi Treatise
태극권이란 이름은 『주역(周易)』의 태극과 음양 개념을 권법에 체화(embodied)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태극권은 어떻게 주역의 음양이론을 실현한다는 말인가? 이 질문은 선(禪)의 화두(話頭)로 삼을 정도로 오랜 참구(參究)가 필요한 질문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사람이든 무술로 태극권을 진지하게 배우려는 사람이든 이 질문에 답을 얻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태극권의 이법(理法)을 배우기 위해 주역을 공부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주역』은 기원전 주(周)나라의 문왕(文王)과 진시황(秦始皇)이 언급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어렵고 그 범위 또한 넓고 깊다. 주역에 대한 이해는 책 한권으로 끝나지 않는 별개의 공부이다. 설령 주역을 읽어서 그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을 한다고 해도 「태극권론」에서 다룬 경계에 이르기 어렵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현대인에게는 주역이 담고 있는 사고와 용어를 파악하는 작업은 낯설고 난해한 공부일 수 밖에 없다. 주역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본문, 그리고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빼더라도 해설에 해당하는 십익(十翼), 특히 「계사전(繫辭傳)」은 읽어야 한다. 그럴 수 있어야 주역에서 말하는 태극・음양이 태극권에서 어떻게 대체되는지 추적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태극권의 이정표와 같은 이 「태극권론」을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는 것이다. 『주역』과 연관된 부분을 찾아 설명하고 권론이 정의하는 태극권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이치를 풀이하여 행간의 뜻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reading between the lines)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도 몸으로 체득하는 기본 과정이 있어야만 도움이 될 수 있다. 몸의 감각이 기본이고 글은 보조 수단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태극권론(太極拳論)」은 이론일 뿐 실제 태극권의 움직임과 별개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태극권의 수련에서 심법(心法)의 역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심법’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동작에 그대로 담겨서 드러나는 형상이며 태극권이란 프로그램 그 자체다. 권론을 무시하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태극권의 역사 속에 등장했던 태극권 종사들이 모두 헛된 말을 했다는 것과 같다.
본래 진가구에서 전해지던 권가(拳歌:권의 노래)는 다섯 자나 일곱 자 정도의 짧은 구결(口訣)이었다. 「태극권론(太極拳論)」은 북송(北宋) 시대 주염계(周濂溪: 1017–1073)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자신들의 간결한 권가와 결합한 권론(Kim and Park, 2004, 228)이라 할 수 있다. 「태극권론」을 쓴 왕종악(王宗岳: ?)은 진가구의 13대 진병왕(陣秉旺) 시기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태극권의 역사상 그의 존재감은 태극권이 아니라 『음부창보(陰符槍譜)』와 『태극권보(太極拳譜)』와 같은 문헌 때문이다. 『태극권보』에는 ⑴태극권론(太極拳論), (2)십삼세(十三勢), (3)십삼세행공가결(十三勢行功歌訣), (4)타수요언(打手要言), (5)타수가(打手歌) 등이 실렸다(Kim, 2025, 92).
선행연구로 정민수(Jeong, 2002a)와 정민섭(Jeong, 2002b)이 있지만 모두 번역 논문에 불과하다. 태극권론과 같은 옛 선현들이 남긴 문헌은 태극권을 배우는 이들에게 중요한 징검다리가 된다. 본 연구는 태극권을 공부하려는 후학들에게 권론을 통하여 태극권의 성격을 정의하고 파악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태극권론」의 저자인 왕종악(?)의 생몰년(生沒年)은 14대 진장흥(陣長興:1771–1853)보다 윗세대 사람으로 추정할 뿐 활동한 사실 등 그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든 그의 「태극권론」은 태극권을 언급할 때 뺄 수 없는 일종의 경전, ‘권경(拳經)’으로 통한다. 태극권론은 진씨(陣氏)의 집성촌이던 진가구(陳家溝)란 변방에 있던 13세가(勢架), 장권(長拳), 면권(綿拳)의 진가권(陳家拳)을 중국의 주류철학에 편입시키는 근거가 되었다. 동북아의 주류 철학의 뿌리인 주역(周易)의 이론을 차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극권론」은 전반적으로 주역의 흐름과 내용을 따른다. 이 권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초식 이름이나 간단한 가결(歌訣)이 있었을 뿐 권법에 대한 이론체계가 부족하였다. 태극권론의 등장은 태극권의 이론을 체계화하였음을 의미한다(Park, 2004, 31). 단순히 동물의 동작을 따라 만든 것이라거나 한 인물의 가설에 기댄 이론이 아니라 그 시대 지식인들의 담론인 태극 이론에 맞게 정돈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과 문화의 발달사는 유교가 주역을 자신들의 학문 안으로 편입시킨 것과 유사하다. 주역에 대한 공자(孔子)의 서사가 먼저 있었고 주렴계-정이천-주희로 이어지는 성리학이 자신을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이기론(理氣論)으로 발전시키며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을 정립하였다.
진시황(秦始皇)이 벌인 분서갱유(焚書坑儒)에서 『주역』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철학서가 아니라 점을 치는 점서(占書)였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서 여전히 미래를 알아보는 명리학과 토정비결의 근거가 되는 원본이지만 점서의 역할은 주역의 일부일 뿐이다. 양력(楊力)의 『주역과 중국의학』에 나오듯 주역은 의학, 문학, 철학, 자연과학, 천문학, 지리학, 사회과학에 이르기까지 동북아 철학과 문화의 뼈대를 이루는 경전이다(Yang, 1995).
이런 중요한 철학 원리가 몸과 관련된 의학이나 권법에 차용되었다는 것은 동북아 문화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의학(韓醫學)과 팔괘장(八卦掌), 태극권(太極拳) 등이 모두 주역이 제공하는 철학을 이용하며 지리학의 풍수(風水)도 마찬가지다. 풍수는 살아있는 사람의 집을 양택(陽宅)이고 죽은 사람의 무덤은 음택(陰宅)이라며 삶과 죽음의 환경을 기(氣)의 음양론으로 이해했다.
한국을 상징하는 국기로 태극기가 선정된 것은 조선 사회의 선비들이 가진 주역과 관련된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은 관리를 뽑는 텍스트는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이었다. 그들이 배운 지식 중 연상되는 도표는 『역경』과 관련한 주돈이(周敦頤/濂溪, 1017–1073)의 태극도설일 것이고 이런 이미지는 그대로 태극기에 투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한제국 시절을 살아가던 세기말의 지식인들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주역의 태극문양과 괘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웠을 것이다(이에 비해 완전히 새로운 공산국가를 꿈꾸던 근대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주역의 학문적 틀은 극복하거나 없애야 할 봉건사회의 잔재였다.)
주돈이는 주역의 이론을 태극도설로 설명하였고 주희(朱熹: 1170–1200)는 정이천(程伊川, 1033–1107), 정명도(程明道, 1032–1107)로 대표되는 이전 송학(宋學)의 흐름을 이어받아 집대성하였다. 당시 신유학자들은 불교를 비판하면서도 그 심성론을 받아들였고 주역과 도덕경이 제시하는 자연관으로 인간-국가-우주가 연결되는 유기체적 국가론을 구축하였다.
『주자전서(朱子全書)』는 주희의 뜻을 계승한 성리학자들이 주희(朱熹)의 서책을 집대성한 것이다. 성리학자들의 주된 소재는 이기론(理氣論)・도덕론(道德論)·수양론(修養論)이었다.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퇴계(退溪)와 이이(李珥)의 논쟁거리였던 이기론도 주희가 정리한 성리학의 계승이었다. 이기론은 정이천(程伊川)의 이원론을 계승하여 체계화하였고 도덕론에 쓰이는 성즉리(性卽理) 또는 심즉리(心卽理)도 그 사고의 연장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성리학의 뿌리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이고 이를 거슬러 가면 『주역(周易)』 십익(十翼) 중에서도 「계사전(繫辭傳)」의 태극 이론이 바탕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종구(Park, 2004, 26)가 당호(唐豪)와 고류형(顧留馨)(Tang and Gu, 2000, 158)을 인용해서 주장하듯이 왕종악의 「태극권론」은 주돈이와 주희가 살았던 1020–1200년이 아니라 그들의 저서를 정리한 『주자전서』가 출간된 1757년 이후에 쓰인 것으로 본다. 「태극권론」의 도입 부분은 『주자전서』의 내용과 같음을 알 수 있다.
표 1. 주자전서와 태극권론 비교
| 주자전서(朱子全書) | 태극권론(太極拳論) |
|---|---|
| 無極而太極 太極生陰陽. 무극으로부터 태극이 나고, 태극이 음양을 낳는다. | 太極者, 無極而生 陰陽之母也. 태극은 무극에서 낳아지니 음양의 어머니다. |
| 無過不及(무과무급) | 無過不及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다. |
| 不偏不倚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 不偏不倚(불편불의) |
| 陽主動而陰主合, 故陽曰變而陰曰合 양은 움직임을 주로하고 음은 합을 위주로 한다. 그래서 양은 변화하고 음은 합한다고 한다. | 動之則分, 靜之則合 움직이면 나뉘고 고요하면 합한다. |
주역에서 말하는 ‘가까이는 몸에서 구하고[近取諸身], 멀리는 사물에서 구한다[遠取諸物]’는 좋은 예가 한의학과 태극권이다. 주역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우리의 몸은 주역의 이론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상이다. 「태극권론」은 역의 도리를 태극권에 적용하였고 그 내용을 다음 네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태극은 무극에서 생기고, 움직임과 고요함의 시초이고 음양의 근본이다. 움직이면 나뉘고, 고요하면 합한다.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으며, 굽히고 펼침이 자유롭다. 상대가 강하고 내가 부드러움은 주(走)이고, 내가 순(順)하여 상대가 거스르는 행위를 점(黏)이라 한다. 상대가 급하게 움직이면 급하게 대응하고, 느리게 움직이면 느리게 반응한다. 변화가 무궁하나, 이치는 하나이다. 동작이 익숙하게 되면 점차 동경을 깨닫고, 동경을 깨치면 神明에 이른다. 허나 공력을 오래 쌓지 않으면 활연히 깨칠 수 없다.
太極者, 無極而生, 動靜之機, 陰陽之母也. 動之則分, 靜之則合。 無過不及, 隨屈就伸。 人剛我柔謂之走, 我順人背謂黏。 動急則急應, 動緩則緩隨。 雖變化萬端, 而理爲一貫。 由着熟而漸悟懂勁, 由懂勁而階及神明。 然非功力之久, 不能豁然貫通焉。
첫 단락은 태극-음양으로 진행되는 우주 변화의 원리처럼 태극권이 가진 움직임의 시작을 설명한다. ‘太極者, 無極而生, 動靜之機, 陰陽之母也.’는 『주자전서』의 진행과 같다. 태극권 동작의 허실변화는 자연의 성장과 쇠퇴 그리고 음양변화의 과정이다. 움직임은 분리됨이고 멈춤은 합하는 것이다[動之則分, 靜之則合]. 분리된다는 말은 태극-음양 변화처럼 신체의 손과 발의 움직임이 나뉘는 것이다. 동작하는 양손은 몸의 위쪽, 발은 몸의 아래쪽을 맡으며 손발의 교차 역시 음양의 변화이다.
손과 발의 움직임은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으면서 (동작의) 굽힘과 펼침이 자유로워야 한다[無過不及, 隨屈就伸]. 태극-음양의 움직임은 구별이 있는 자유로움이어야 한다. 팔과 발을 얼마큼 뻗고 나가는가의 기준이 과하지 않게 굽히고 펴는 것이다. 편의상 무릎을 90도로 세우고 팔을 45도로 움직이라는 등으로 말할 수 있지만 개인의 차이가 있어서 규격화는 때론 기의 운행을 방해한다. 태극권의 굽히고 펴는 굴신의 움직임은 음양의 다른 말이다. 태극권은 춤사위가 아니다. 춤은 인간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표현 예술이지만 태극권은 몸에 내재 된 기(氣)의 발동이 바탕에 깔린 강유상제(剛柔相制)의 움직임이다.
태극권이 상대와 대적하는 방식은 상대에 맞서는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상대의 기세에 감응하는 태도다. 상대가 강하게 의도를 드러낼 때 같이 맞서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기세에 감응하여 대응한다[人剛我柔謂之走. 我順人背謂黏]. 주(走)는 감응하는 나의 입장이고 점(黏)은 상대가 힘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이다. 그래서 ‘급하게 움직이면 급하게 대응하고 느리면 느리게 대응’하며 상황에 따라 응대하는 방식이다. 태극권의 응물자연(應物自然)이다. 오해하지 말 것은 태극권의 부드러움은 같은 힘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상대에게서 도망을 치는 게 아니라 돌격하는 상대의 힘을 부드러움의 전사경(纏絲勁)으로 상쇄하는 것이다. 자기를 보는 태도가 주(走)이고 상대를 보는 것이 접촉한 부분의 점(黏)이다. 그래서 주와 점은 하나이며 손의 접촉은 떼지 않는다.
‘雖變化萬端, 而理爲一貫’란 표현은 강유상제가 어떤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는 태극권의 무기임을 말한다. 진장흥(陣長興: 1771–1853)은 그의 「태극권십대요론(太極拳十大要論)」에서 이렇게 말한다.
태극권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도 경(勁)이 아닌 것이 없고, 자세가 비록 같지 않아도 경(勁)은 하나로 돌아간다. 이른바 하나라 하는 것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안으로는 장부와 근골, 밖으로는 피부와 근육으로 된 사지백해(四肢百骸)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를 이룬 것이다. 그것은 깨뜨려도 쪼개지지 아니하고 부딪쳐도 흩어지지 아니하고, 위가 움직이고자 하면 아래가 절로 그에 따르고, 아래가 움직이려 하면 위가 절로 그를 이끌며, 위와 아래가 움직이면 가운데의 그가 응하고, 가운데가 움직이면 위아래가 그에 조화를 이루며, 안팎이 서로 이어지고, 앞뒤가 서로를 필요로 하니, 이른바 ‘하나로 꿰뚫는다[一以貫之]’는 것은 이를 일컫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억지로 그것을 이루어서는 안 되며 숙달이 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진장흥의 설명을 보면 태극권은 이미 시대의 주류학문에 편입되어 공자와 노자가 말한 경계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추가 아니라 유불도의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이것은 태극권 자체만의 힘이라기보다는 유불도(儒佛道)가 따로 분류되어 발전하다가 송(宋) 시대를 거치고 명(明) 시대에 이르러 서로 간의 학문적 통합이 이뤄진 흐름이 태극권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Im, 2010, 31). 시골 진가구에서 ‘십삼세(十三勢)’가 탄생하고 이후 ‘태극권(太極拳)’으로 명칭이 바뀐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시대적인 조류를 반영한 것이다.
첫 단락의 마지막 표현 ‘동작이 익숙해져서 경을 깨치고[懂勁], 신명(神明)으로 나아간다’함은 감각의 영역이다. 번역이나 해설로 의미를 알 수 없다. 동경은 기와 경(勁)의 느낌이 뚜렸해져서 운용되는 단계이고 신명(神明)은 그런 몸의 감각이 더욱 민감해져서 상대의 에너지와 의도를 읽을 정도로 깊어진 단계다. 신명의 움직임은 일반인의 눈에는 육체적 한계를 벗어난 몸짓이 된다.
정수리의 경을 가벼이 들어 올리고(머리와 목의 신법),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여 기를 단전에 내리게 한다. 어느 편으로도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게 하며(몸의 신법인 입신중정), 나타나고 숨음이 교차하여 일어난다. 왼쪽이 무거우면 왼쪽을 비우고, 오른쪽이 무거우면 오른쪽을 유연하게 하라. 올리면 한없이 높이고, 내릴 땐 더욱 깊이 내린다. 나아가면 더 길어지고, 물러날수록 더 급하다. 깃털 하나도 더 붙일 수 없으며, 파리조차 내리 앉을 수 없다. 상대는 나를 모르고, 나 홀로 상대를 알고 있나니. 영웅이 가는 곳에 적이 없으며, 모두 이로부터 비롯된다.
虛領頂勁, 氣沈丹田。 不偏不倚, 忽隱忽顯。 左重則左虛, 右重則右沓。 仰之則彌高, 俯之則彌深。 進之則愈長. 退之則愈促。 一羽不能加. 蟲蠅不能落。 人不知我, 我獨知人。 英雄所向無敵, 蓋由此而及也。
두 번째 단락은 태극권을 수행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몸의 조건, 즉 신법(身法)에 대한 설명이다. 언뜻 보기에 양징보(揚澄甫: 1883–1936)가 정리한 연권십요(練拳十要)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다르다. 연권십요는 여기저기에 있던 간단한 신법과 심법(心法)의 표현을 4자(字)로 정리한 것이고 여기 권론에 나온 신법은 투로(套路)를 운영하는 몸의 안과 밖의 상태와 운용법을 표현한다.
허령정경(虛領頂勁)은 목과 머리의 신법이지만 몸 전체의 상태와 연관이 있다. 정수리 부분과 목 부위를 편하고 가볍게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번도 그렇게 힘을 빼고 목을 세워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을 빼서 목을 곧장 세울 수 있다면 氣는 저절로 단전으로 떨어진다[氣沈丹田]. 목과 어깨를 편하게 늘어뜨릴 수 있다면 억지로 호흡하지 않아도 자연히 기는 하단전으로 이어진다.
위의 번역에서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라고 굳이 덧붙인 이유는 보통 수련지도자들이 강조하는 인위적인 호흡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들이키고 내쉬는 호흡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으나 지나친 강조와 반복되는 설명은 피하는 게 좋다. 수련자들을 호흡 강박증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호흡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동작할 때 부조화가 발생하고 때로는 기의 운행을 방해한다. 기공과 태극권에서는 항상 움직임에 맞는 호흡을 자연스럽게 하라고 주문한다(Kim and Kwon, 2015, 177). 호흡에 신비한 비밀이 있는 건 아니다.
진장흥의 「태극권십대요론」에는 첫 번째 리(理)가 있고 두 번째는 기(氣)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Park, 2001, 418). ‘세상에서 권을 논하는 자는 기를 함께 말한다[常有世之論捶者 而兼論氣者矣]’며 기를 당연시하지만 호흡에 대한 언급은 부차적이다. ‘호흡(呼吸)은 들이키고 내쉬는 것으로 이것이 곧 음양이다. 내쉬는 호(呼)는 양이고 흡(吸)은 곧 음이다. 상승하는 양의 기는 청기(淸氣)이고 하강하는 음의 기는 탁기(濁氣)이다.’ 호흡의 설명은 이런 정도로 그침이 좋다. 진장흥이 말하는 호흡도 들이키고 내쉴 때의 구별일 뿐 수련할 때 호흡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아니다.
‘不偏不倚(불편불의), 忽隱忽顯(홀은홀현)。 左重則左虛(좌중즉좌허), 右重則右沓(우중즉우묘)。’ 몸의 좌우 어느 한 편으로도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게 동작한다. 좌측이 무겁다가 곧 허해지고 우측이 무겁다가 곧 흩어진다. 이는 몸을 반듯하게 세우는 입신중정(立身中正)에 대한 설명이다. 몸을 세워서 움직이되 상황에 따라 때론 좌측 때론 우측으로 허실의 변화를 준다. 이는 정지된 몸의 상태가 아니라 상대와 대적할 때의 운신법이다.
仰之則彌高(앙지즉미고), 俯之則彌深(부지즉미심), 仰以觀於天文(앙이관어천문), 俯以察於地理(부이찰어지리)란 ‘위로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살핀다’의 표현을 빌렸으나 뜻은 다르게 사용했다. 내리거나 올리는 동작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는 의미다. ‘나아가면 더 길어지고 물러서면 더 촉박함[進之則愈長. 退之則愈促]’은 동작의 출수와 마무리가 상황에 따름을 말한다. 태극권의 동작은 기계적인 맞춤이 아니라 에너지를 운용하는 것이다. 이 흐름을 체득할 수 있어야 ‘깃털 하나도 더 붙일 수 없으며, 파리조차 내리 앉을 수 없다[一羽不能加. 蟲蠅不能落]’는 엄밀함을 알게 된다. 몸이 부드러워져서 감각이 최상에 이르면 그 정교함이 자신은 상대를 알고 적은 모르니 자신이 가는 어느 곳이든 영웅이 된다[人不知我, 我獨知人。 英雄所向無敵, 蓋由此而及也。]는 것이다.
이 기예(무술)에는 여러 문파가 있다. 비록 그 勢(형태)에 구별은 있으나, 대개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이기고 느린 것이 빠른 것에 지며,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때리고, 손이 느린 자가 빠른 자에게 당한다. 이는 선천적으로 자연스런 본능이며, 힘쓰는 법을 배운 것과는 다르다. 넉 냥의 힘으로 천근을 튕겨낸다는 구절을 보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님이 명백하다. 노인이 능히 많은 사람을 저지하는 모습을 보건데, 어찌 빠름으로 이를 이루겠는가.
斯技旁門甚多。 雖勢有區別, 槪不外壯斯弱, 慢讓快耳。 有力打無力, 手慢讓手快。 是皆先天自然之能, 非關學力而有爲也。 察四兩發千斤之句, 顯非力勝。 觀耄耄能禦衆之形, 快何能焉。
여타의 무술은 근력의 힘이나 속도에 의존한다. 이것은 자연 생태계의 물리학의 원리이고 힘이 세력을 얻는 1차원의 논리이다. 힘 있는 자가 힘이 약한 자를 때리고 손이 느린 자가 빠른 자에게 맞는다는 것은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무술이라면 1차원에서 벗어나 작은 힘으로 상대를 이기고 힘이 없는 노인이 능히 청년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한다. 태극권은 넉냥(四兩)이란 작은 힘으로도 천근(千斤)의 힘을 상대하고 늦게 출발해도 더 빨리 상대를 때릴 수 있다[後發先至]는 비유를 즐겨쓴다. 사실 이 두 가지 원리는 태극권만이 아니라 무술이라면 마땅히 그런 효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후발선지(後發先至)는 유대유(兪大猷: 1504–1580)의 『검경(劍經)』에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본 이후에 움직여도 상대에게 먼저 도달한다는 말이다.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은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의 말이다. 이런 원리를 펼칠 수 있어야 검(劍)을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얕고 작은 병기인 검이 어찌 청룡언월도와 같은 무거운 무기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상대의 강한 힘이 담긴 무거운 병기를 작은 힘으로 상대하는 원리가 후발선지이고 사량발천근이다. 상대를 읽고 대응하면 하중과 근력의 힘은 의미가 없어진다.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을 구사하는 정도가 태극권 공부의 수준이다. 태극권 공부가 깊어지면 상대에 대한 나의 힘이 작아도 되므로 노인이 청년을 이길 수 있다. 궁극에 이르면 감각을 통한 경이 아니라 공간을 두고도 가벼운 기세(氣勢)로 상대를 제압하는 원리다. 첫 문단에서 신기(神氣)로 나아간다는 말은 이것과 연관된다.
몸을 세울 때는 저울처럼 정확하게 설 것이며, 영활(靈活)하기는 마치 수레바퀴와 같으니 한 쪽으로 기울면 빠지고[隨/수], 양쪽에 무게를 두면[雙重/쌍중] 둔하다. 수년간 열심히 수련하고서도 운용하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여 상대에게 제압당한다면 쌍중의 병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 병폐를 피하려면 반드시 음양을 알아야 한다. 점(黏)은 곧 주(走)이고 주는 곧 점이다. 음은 양을 떠나지 않으며, 양은 음과 떨어지지 않는다. 음양은 서로 보완할 수 있어야 경을 알 수 있다[懂勁]. 경을 알 수 있어야 수련할수록 정심해지고, 점차 뜻하는 대로 실행된다. 근본은 나를 버리고 상대를 따르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지만 먼 곳에서 구하는 많은 오류를 범한다. 이는 소위 터럭만큼의 차이가 천리의 차이를 가져오는 격이다. 배우는 자는 이를 상세히 구별해야 할 것이다.
立如平準. 活似車輪. 偏沈則隨。 雙重則滯, 每見數年純功, 不能運化者, 率皆自爲人制, 雙重之病未悟耳。 欲避此病, 須知陰陽。 黏則是走. 走則是黏。 陰不離陽, 陽不離陰, 陰陽相濟, 方爲懂勁。 懂勁後, 愈練愈精, 默識揣摩, 漸至從心所欲。 本是捨己從人, 多誤捨近求遠。 所謂差之毫釐, 謬以千里, 學者不可不詳辨焉。
몸을 저울처럼 세우고 좌우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민첩하고 영민하게 움직인다. 중요한 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몸이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거나 기대는 쌍중은 한쪽에 걸려서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함이고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쌍중은 부분의 문제이면서 전체의 문제이다. 허리를 포함한 하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움직임과 연결된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쌍중은 육체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몸의 음양 변화를 몸으로 명확히 하지 못하면 태극권은 깊어지지 않는다. 음양은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왼손의 움직임이 주인공일 때 오른손은 깨어서 기다리는 정중구동(靜中求動)이다. 반면 왼손은 동중구정(動中求靜)의 상태이다. 이렇게 음양이 서로 떠나지 않는 음양 변화의 이치를 알아야 경(勁)을 알게 된다[懂勁]. 경을 알고 쓸 수 있으면 용의불용력(用意不用力)하는 이치와 심법이 실현된다.
유대유(兪大猷)의 『검경』에도 “음양을 바꾸는 것을 급하게 하면 안 되고, 때를 맞춰 곤(棍)을 누르면 힘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Yu, 2023, 192)”는 표현이 나온다. 주역의 음양개념이 태극권론에만 사용되지 않는 인문학의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검경』은 근력의 힘을 사용하는 외가권의 이치를 다루지만 ‘상대의 기세에 순응해 상대의 힘을 빌리는’ 이치를 명확하게 말하고 있고 이를 깨치는 것은 매우 신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대의 힘은 어디서 나오든 상대와 힘을 다투지 않고, 잠시 참았다가 그 힘이 거의 지나가고 새로운 힘이 아직 나오지 않은 때를 틈타는 법도 설명한다[舊力略過新力未發].
강유상제(剛柔相制) 또는 동중구정(動中求靜)이라는 태극권의 표현도 검경에 나타난다. 이량흠이 전수한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대신하는 법’을 묘하다고 감탄한다. 검경 158의 내용이다(Yu, 2023, 222).
배워서 여기에 이르렀으면 몸과 손발이 마음에 따라 움직이니 모든 것이 맞지 않는 것(扞格)이 없다. 배워서 여기에 이르면 모두 상대가 창인지 칼인지 보지 않고, 단지 상대의 손을 노려보고 겨누고 나아가 상대의 몸을 공격할 뿐이다. <중략> 상대가 움직이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以靜待動]이고, 상대가 힘쓰는 것을 편안하게 기다리는[以逸待勞] 도리이다. 미묘하고 미묘하도다. 이량흠의 모든 것이 이러하였다.
갈수(擖手) 수련을 하면 상대와 접한 왼손에 생각이 붙어있으면 오른손이나 다른 신체가 자유롭지 않다. 이것도 일종의 쌍중과 같아서 음양이 조화롭지 않기 때문에 필요할 때 변화를 이룰 수 없다. 음양이 조화롭고 변화에 걸림이 없어야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도 거슬림이 없는 종심소욕(從心所欲)에 이른다. 태극권은 상대의 뜻에 따르기에 나의 허물이 없어져 마침내 나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다른 유파의 무술과 달리 자신의 고집이 우선하지 않음이니 맹자가 말한 사기종인(捨己從人)의 무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기종인하는 도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에게 있다. 스스로가 가진 걸림의 원인은 자신에서 있다. 태극권의 느림과 부드러움은 자신의 업장을 드러내게 하고 그 업장을 제거하는 수단이 된다.
조선은 성리학의 시대였고 선비들이 어릴 때 부터 익히는 주요 텍스트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이었다. 그들의 삼경에는 역경인 『주역』이 포함되므로 太極-陰陽-八卦는 상식이었을 것이다. 처음과 달리 유가・도가・불가는 서서히 통합되었고 주역은 중국 주류 인문학에서 뺄 수 없는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매김하였다. 과거 동북아 인문학에서 주역을 별도로 구별해서 보는 건 무의미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구별해서 살펴보는 것이 학술적 연구의 기본일 것이다.
앞장에서 살핀 「태극권론」의 첫 단락 ‘태극은 음양의 부모’, ‘움직임과 고요함[동정(動靜)]’, ‘구부리고 폄[屈伸/굴신]’ 등은 모두 음양의 다른 표현이다. 음양은 추상적 개념이지만 동작을 설명하는 동정이나 굴신 등은 태극권 동작의 구체적 표현이다. 아무리 변화가 많아도 그 이치는 하나로 관통한다[雖變化萬端, 而理爲一貫]. 여기서 말하는 한 가지 이치는 추상적으로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이고 동작은 굽히고 펴는 것이다.
두 번째 단락에 나오는 “仰之則彌高(앙지즉미고), 俯之則彌深(부지즉미심)”은 「계사전」에 나오는 표현인 “仰以觀於天文(앙이관어천문), 俯以察於地理(부이찰어지리). 是故(시고) 知幽明之故(지유명지고), 原始反終(원시반종).”또는 “仰則觀象於天(앙즉관상어천), 俯則觀法於地(부즉관법어지)”를 차용하고 있다. 이어 “關鳥獸之文(관조수지문), 與地之宣(여지지선), 近取諸身(근취제신), 遠取諸物(원취제물)”이란 표현도 네 번째 단락에서 인용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가까이는 몸에서 구하고[近取諸身], 멀리는 사물에서 구한다[遠取諸物]’는 표현을 권론은 4단락에서 인용한다. 가까이 몸에서 구하는 이치를 모르고 멀리서 구하는 오류를 범한다[多誤捨近求遠]고 말이다.
네 번째 단락, 쌍중의 병을 언급하는 부분, “陰不離陽(음불리양), 陽不離陰(양불리음), 陰陽相濟(음양상제), 方爲懂勁(방위동경)”의 표현은 「계사전(繫辭傳)」 첫 부분 “天尊地卑(천존지비), 乾坤定矣(건곤정의)” 다음에 오는 표현 “剛柔相摩(강유상마), 八卦相盪(팔괘상탕).”을 본받았다. 지엽적인 것으로 가볍게 비쳐질 수 있으나 주역의 표현을 가볍게 보지 않았던 옛 사람의 관성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극권론은 주역의 변화 이론을 담고 있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주역』을 다룰 때 빠지지 않는다. 둘은 숫자(數字)와 도상(圖象)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황하(黃河)에서 그림이 나왔고 낙수(洛水)에서 글이 나왔는데 성인이 이것을 본받았다.”라고 되어 있다.” 하도는 천지와 공간을 상징하는 복희(伏羲)의 선천팔괘(先天八卦)이고 낙서는 오행과 시간의 변화를 상징하는 문왕(文王)의 후천(後天) 팔괘이다. 앞은 체(體)라 하고 뒤는 용(用)이라 표현되며 어떤 물건의 형체와 그 물건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독일 출신의 중국학자인 Richard Wilhelm(1873–1930)은 주역을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이라 번역했는데 주역은 자연과 인간의 흥망성쇠(興亡盛衰)하는 변화의 이치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주역은 인간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던 최초의 결과물 중 하나이다. 그 작업의 주제는 모든 존재의 기저가 되는 지속적인 변화와 변신이다.”라고 표현했다.
진흠(陳鑫: 1849–1929)도 『진씨태극권도설(陳氏太極拳圖說)』의 첫 부분에 주역의 개념들을 먼저 제시한다. 하도와 낙서를 인용하고 태극이 음양을 낳고 사상과 팔괘로 진행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천지인(天地人) 삼재도(三才圖)를 그려서 서로의 유기적 관계를 밝히고 한의학의 12경락과 전사경(纏絲勁)의 작동과 연결한다(Chen, 1997, 77). 태극권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권일(拳一)이며 권을 공부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학권수지(學拳須知)’의 말로 시작한다(Chen , 1997, 154).
태극은 무극에서 나온다. 소리도 모양도 없던 무극이 점차 의도를 드러내고 준비하는 시기가 태극이다. 권을 수련할 적에는 아직 손발의 움직임이 없지만 외부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상태이다. 오직 한뜻으로 정신을 집중하고 공경하는 태도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손과 발의 음양 개합(開合)이 준비된 상태이다. 이렇게 진흠은 손발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전과 후의 단계를 무극과 태극으로 규정하며 도설(圖說)을 시작하였다.
태극권론을 마무리 짓는 4단락에는 유가의 철학을 차용하고 있다. ‘점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게 된다(漸至從心所欲/점지종심소욕)’와 ‘자신을 버리고 타인을 따른다(捨己從人/사기종인)는 두 표현이다.
첫 번째 표현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나온 말로써 공자가 자신의 칠십세를 두고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한 표현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니까 태극권의 수행자가 음양의 이치를 깨달아 음에도 양에도 걸리지 않는 쌍중의 병을 해결하면 정심해져서 ‘하고자 하는 바대로 이룰 수 있는 경지’에 간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는 사기종인의 행위이다. 자신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상대의 의도를 동경(懂勁)하므로 ‘상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어 자기의 뜻대로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태극권은 힘에 의존하지 않는 사기종인의 무술이라고 정의한다.
두 번째의 ‘사기종인’은 『맹자(孟子)』의 「공손추상편(公孫丑上篇)」에 나온 말이다. 이 장구는 총 9장으로 되어 있고, 2장에는 호연지기(浩然之氣), 8장에 사기종인이 나온다. 호연지기에 비해 사기종인(捨己從人)은 널리 알려진 말은 아니다.
맹자 말씀하길, 자로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음을 말하면 기뻐하였다. 우왕은 선한 말을 들으면 절하셨다. 대순은 이보다 더 위대함이 있었으니, 선을 남과 함께 하여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시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행하는 걸 좋아하셨다. 밭을 갈고 곡식을 심으며 질그릇 굽고 고기 잡을 때로부터 황제가 됨에 이르기까지 남에게서 취한 것 아님이 없으셨다.
孟子曰 子路 人告之以有過則喜. 禹 聞善言則拜. 大舜 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 以爲善. 自耕稼陶漁 以至爲帝 無非取於人者.
사기종인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른다’란 말로 번역한다. 자기 생각이나 행동을 남에게 강요하기 보다 상대의 의도에 맞춰서 행동한다는 말이다. 이는 상대방과 대적할 때 뿐만 아니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주고 받는 대화에서도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상대에게 강요하기 쉽다. 이처럼 태극권의 권리(拳理)는 상대의 의도를 읽고 그에 맞춰서 대응하는 것이다. 자기의 뜻을 힘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음양의 차이와 이치에 따라 응하는 것이 사기종인이다.
무술은 오랜 수련을 통한 몸의 중화(中和)가 필요하다. 손록당(孫錄堂: 1829–1900) 선생은 “권술의 도(道)는 중화(中和)를 가장 중시한다. 중화 말고는 다른 오묘함이 없다”고 하였다. 내기의 순환으로 몸의 안과 밖이 합일(合一)하여 이뤄지는 중화의 과정이 없으면 무술은 단순히 기계적인 움직임이거나 체조와 비슷한 동작일 뿐이다(Kim et al., 2019, 81).
본 연구의 목적은 「태극권론」이 설명하는 태극권을 정의하는 것이었다. 태극권은 주역의 태극-음양론이 적용된 중국 전통의 무술이며 왕종악의 「태극권론」은 이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 권론의 내용은 그저그런 권론이 아니라 실제 태극권이 작동하는 이치다. 그러므로 태극권의 전문용어가 결합된 권론은 단순한 용어 해설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태극권론의 태극・음양의 개념은 태극권 수련을 통하여 체득해야 할 몸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 유의하며 본 연구는 주역과의 관계, 주역에서 인용된 문구, 권론의 내용이 가진 의미를 밝혀서 태극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 하였다. 권론에는 주역의 직접적인 인용도 있고 연관된 표현도 있다. 「태극권론」은 태극권이 주역의 음양 변화를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간단하게 밝히고 있다. 전진과 후퇴, 움직임과 멈춤[動靜], 몸을 펼치고 굽히는 변화로 나타난다. 굴신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동작이지만 몸 내부의 감각이 섬세하게 발달하면서 신명(神明)으로 나아간다.
「태극권론」의 구성은 첫째 태극권의 태극과 음양, 둘째 태극권을 수행하는 이의 몸의 조건, 셋째 다른 무술과의 차이, 넷째 자신을 버리는 의미에 대한 정의이다. 권론은 지극히 간략한 문장이지만 주역의 음양이론, 본능의 힘에 의존하지 않는 태극권의 이치, 상대를 접하는 의미와 유가의 심법으로 태극권을 설명한다. 주역의 음양 변화이론을 따르는 태극권은 본능의 힘에 의존하는 걸 벗어나는 것이다. 본능의 힘은 내부적으로는 고집을 부리는 것이고 겉으로는 근육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본능적인 고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자기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의 뜻에 유연하게 맞출 수 있다는 말이다.
태극권론이 말하는 태극권은 12세기 이학(理學)이라는 성리학이 지향한 인격의 완성으로 가는 구체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태극권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태극권이 작동하는 프로그램 그 자체이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움직임의 철학은 맹자의 사기종인(捨己從人)과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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