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ukhoon Cho1, Hoewon Pa2
1Professor, Department of Liberal Arts, Kyonggi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2Lecturer, Department of Chinese Language and Literature, Kongju National University, Republic of Korea
Correspondence to Keukhoon Cho, chokh6611@naver.com
Volume 1, Number 1, Pages 27–37, January 2026.
Journal of Intellectual Property 2026, 1(1), 27–37. https://doi.org/10.?????/HNC.2026.1.1.3
Received on August 21, 2025, Revised on January 30, 2025, Accepted on January 30, 2026, Published on January 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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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bbornness, Hegel, Nietzsche, dialectics, existential philosophy, self-growth
일반인들은 철학자에 대해 흔히 “고리타분하다, 완고하다, 고집이 세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특히 철학자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특성 때문에, 일반인과 달리 한 가지 생각에만 집착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고집(固執)’이란 자기 의견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주장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우기는 경우를 ‘아집(我執)’이나 ‘쇠고집’이라고 부르며, 지나치게 심한 경우에는 ‘똥고집’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이처럼 고집은 우리 사회에서 주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고집은 자존심과 깊은 연관이 있어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흔히 고집이 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고집이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아집이나 집착처럼 좋지 않은 것을 고집할 때는 부정적이지만, 평소 자신의 의지와 소신으로 좋은 일을 밀고 나가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철학자 중에도 고집불통으로 알려진 인물이 많지만, 이들은 고집과 집념으로 자신의 철학 체계를 세워 인생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지혜를 제공했다.
실존철학은 인간의 의지와 실존적 상황을 단순한 고집이나 집착으로 환원하지 않고, 이를 보편적 철학적 사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사상적 흐름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적 한계 상황에 맞서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니체는 절대적 가치 붕괴의 시대에 초인적 의지로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실존철학은 개인적 고집을 단순한 주관적 태도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실존과 그 지양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인간이 직면한 보편적 한계 상황을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극복하려는 사유의 지평을 열었다.
본 연구는 고집과 관련된 실존철학의 전형으로 평가되는 헤겔과 니체의 사상을 중심으로, 고집의 한계와 그 극복 과정을 철학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인간 의지의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을 도출하고자 한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철학자는 자기만의 고집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모두가 지켜야 할 법과 규칙, 그리고 따라야 할 관습과 도덕이 존재한다. 이러한 관습과 도덕 그리고 법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과 파문이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정한 규칙과 상관없이 사색과 학문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밀고 나간 철학자들이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절대자를 인식한 철학자들도 결국 인간이기에, 감정과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감정과 편견을 오랜 철학적 사색을 통해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며 자신만의 철학 체계를 완성했다. 고집스럽게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철학자들은 어떻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기 철학 체계를 세웠는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로 대표되는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평가된다. 그의 사유는 신이 아닌 인간 자신을 사유의 주체로 삼아야 함을 강조했다. 질문과 대답을 통해 개념의 정의를 탐구하는 귀납적 방법, 즉 산파술로 불리는 그의 철학적 방식은 영혼을 성찰하고 진리를 탄생시키는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 “반성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언명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천명함과 동시에 동시에, 진리가 가시적이고 변화하는 현상계가 아니라 비가시적이고 불변하는 본질계, 즉 영혼의 세계에 존재함을 강조한다. 그는 영혼불멸을 일생의 철학적 신념으로 삼았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라는 말은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돈(Phaedo)』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형을 앞두고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철학의 본질적 목적 중 하나가 죽음을 준비하는 데 있음을 설명했다. 그는 철학적 삶이란 영혼을 육체로부터 최대한 분리해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며, 철학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혼의 해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Platon, 1998, 64a–67b).
하지만 그의 영혼불멸의 철학과 귀납법은 아테네 시민들의 관습과 여론을 자극했다. 젊은이들과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일이 되었고, 그의 행위로 휴머니즘과 ‘영혼불멸론’은 ‘신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결국 아테네 법정은 소크라테스를 71세의 나이에 타락죄와 신성모독죄로 기소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그는 배심원들의 심문 과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철학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거나 신을 모독한 것이 아님을 논증하고 영혼의 철학이 왜 필요한지 역설했다. 그는 배심원들과 타협하거나 사형 하루 전 제자들의 탈출 권유를 받아들여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그리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고집의 철학 아이콘이 되었다. 죽음을 불사한 소크라테스의 고집은 인간의 법과 신의 법 사이의 모순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삶의 가치 및 사회 정의에 대한 깊은 성찰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퇴계는 이기론을 정립해 한국의 성리학을 완성했다. 도산서당, 기대승과의 논쟁, 이기호발설, 성학십도 등은 퇴계 이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업적이다. 그는 인생 후반기에 중용한 학문적 업적을 이뤘다. 58세부터 기대승과 이기(理氣) 논쟁을 시작했고, 60세에는 도산서당을 설립해 7년간 독서와 수양, 저술에 전념했다. 68세에는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지어 17세인 선조에게 바치기도 했다. 성학십도는 학문을 이루기 위해 익혀야 할 유교 경전의 핵심만을 10가지 그림으로 요약한 것으로 선조가 성왕(聖王)이 되어 훌륭한 정치를 펼치기를 바라는 뜻에서 제작되었다(Yi, 2024)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낙향의식 때문이었다. 관직에 올랐으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안동에 서당을 세워 독서와 학문에 전념한 결과였다. 만약 권력과 명예를 위해 관직을 유지했다면 그는 성리학자로서가 아니라 한낱 관리로서 인생을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낙향하여 학문에 매진했고 17세의 선조에게 성리학의 정수를 담은 성학십도를 바쳤다. 이러한 낙향의 결단은 범상한 고집이나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52세부터 70세까지 18년 동안 그가 제출한 사직서만 해도 무려 50회에 달한다(Kang, 2023, 57). 이는 그가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독서와 학문에 얼마나 갈망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1527–1572)과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은 조선 유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문적 논쟁 중 하나로 꼽힌다. 8년여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만 120통에 달하며, 26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에서는 고집이나 집착보다는 학문에 대한 열정, 넓은 마음, 그리고 상대에 대한 예의와 품격이 편지 곳곳에 묻어난다.
사단칠정 논쟁은 퇴계 이황이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이다.”(理發氣發說)라고 주장한 데 대해 고봉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고봉은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情)인데 사단은 이가 발하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라며 사단과 칠정이 완전히 별개로 보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단과 칠정이 본래 두 가지가 아니므로 칠정과 별도로 사단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퇴계는 이에 대해 이(理)와 기(氣)는 개념적으로 구분될 수 있고 사단과 칠정 역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간 논쟁 끝에 퇴계는 최종적으로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른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탄 것”(四端理發氣隨之, 七情氣發理乘之)이라는 명제를 제시했다(Kim, 2003) 이 논쟁은 두 사람이 13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로 남아 있다. 당시 퇴계는 성균관 대사성(58세), 고봉은 과거에 급제한 32세 청년이었다. 이처럼 낙향의식과 활발한 토론문화는 조선 성리학의 심화와 발전을 이끈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스피노자 서양 근대 합리론을 집대성하고 윤리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철학자였다. 그는 교회 권력과 제도적 규율에 굴복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철학을 추구했다. 신과 자연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범신론(pantheism)을 펼쳤으며, 신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했다. 이후 생계를 위해 렌즈를 깎으며 생활을 이어갔다. 스피노자가 본격적으로 철학을 시작한 계기는 20세 무렵 라틴어 학교에서 겪은 실연의 아픔 때문이었다. 그 충격으로 평생 독신으로 살며 고독한 생애를 보냈다. “나는 나의 책을 오직 진리 앞에만 바치겠다”면서 궁핍한 생활에 대한 원조와 누구나 선망하는 교수직 제안마저 모두 거절했다.(Nadler, 2006, 12–15)
그의 책들은 발간과 동시에 금서가 되는 등 많은 학문적 시련을 겪었으나 <에티카> 등 그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자 41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학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제안을 거절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 자신의 철학 연구를 포기해야 하고, 종교를 어지럽히는 일을 피하고자 하면 교육과 연구의 자유가 제한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고독한 삶이야말로 선입견에서 벗어나 정신의 자유를 얻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자연의 모든 존재가 우연이 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필연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보았다. 이러한 세계관은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사과나무 일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필연성을 인식했기에 이러한 비장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교수직까지 거절하고 평생 렌즈를 깎으며 자신을 세상과 철저히 단절한 고독과 은둔의 삶, 바로 이것이 스피노자를 철학사에 남긴 가장 큰 이유였다
다산 정약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이자 개혁가였다. 28세에 문과에 급제해 개혁 군주인 정조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으나 정조 서거 후 천주교 탄압 사건에 휘말려 유배라는 큰 시련을 겪었다. 다산은 18년(1801–1818)의 유배 기간 동안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강진 유배지에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을 집필하며, 백성을 위한 행정 개혁과 형벌 제도 개선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업적의 배경에는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조선 사회의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그의 학문적·실천적 고집이 있었다.
이처럼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산의 고집스러운 학문적 열정과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유배라는 고난 속에서도 학문에 대한 집념을 잃지 않게 했고, 백성을 위한 실용적 지식과 제도 개혁에 몰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정약용은 단순히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했다. 그의 저술은 시대적 한계를 넘어선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Choi, 2020).
헤겔과 니체는 서로 상반된 철학을 펼쳤다. 헤겔은 이성과 정신을, 니체는 의지와 직관을 각각 철학 원리로 삼았다. 비록 이성과 의지는 서로 다른 원리처럼 보이지만 두 사상 모두 인간성의 추구라는 공통된 목적을 지닌다. 헤겔은 의식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의식의 형태로 성장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반면 니체는 기존의 권위나 형식을 부정하고 가치를 스스로 창조하는 초인을 제시했다. 초인은 이성보다는 금강석처럼 단단한 단단한 의지를 상징한다. 고집은 의지를 특정 대상에 고정시키는 태도다. 과연 두 철학자는 고집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성장을 이끌었는가? 이와 같은 고집에 관한 철학적 통찰은 인간의 고뇌와 자기모순의 극복 과정에서 고집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준다.
헤겔은 이성과 개념적 인식을 철학의 핵심 방법으로 보았다. 그는 인식의 목적이 주관과 객관의 통일, 즉 절대자를 절대자를 파악하는 데 있다고 보며, 합리론의 전통을 계승한다. 인간의 의식과 감정은 헤겔 철학에서는 다소 경시되는 부분이 있으나, 그는 이전 철학자들과 달리 절대자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을 역사적 경험 형태로 상세하게 서술했다. 낮은 인식 단계인 감각적 의식에서 시작해 어떻게 절대지라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정신현상학』은 의식의 경험을 단계별로 제시하여, 고집이라는 의식 형태가 단순성을 넘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순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은 감각적 확신에서 출발해 자기의식, 이성, 정신, 종교 그리고 절대지에 이르는 구조로 완성된다.
절대지는 인간의 자기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인식 단계이다. 그러나 헤겔 철학에서 절대자는 이전 철학자들이 강조한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헤겔은 주관성의 원리나 고정된 ‘실체’로서 절대자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자를 ‘주체’로 파악할 것을 강조했다. 주체로서의 이성이야말로 근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인간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실체는 반성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구별없는 보편에 불과하지만, 주체는 “자기 타자화와 자기 자신과의 매개” 운동하는 구체적 보편이다(Hegel, 1952, 19–20). 즉, 고정된 실체로 직관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형성과 자기실현을 통해 만들어지는 주체가 바로 헤겔이 말하는 절대자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주체로서의 절대자를 심층적으로 논의한다. 이 저작에서 의식이 자신의 인식과 대상 사이의 모순을 경험하고, 이를 지양해 절대지에 도달하는 과정을 “의식의 경험의 학”으로 규정한다(Hegel, 1952, 74). 이러한 의식의 경험의 학은 인간 정신이 의식–자기의식–이성–정신–종교–절대지로 발전하는 인식론적 구조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시대적 모순과 분열이 통합되는 과정을 밝힌다. 나아가 헤겔의 인식론은 이성과 감성, 지성과 자연, 절대적 주관성과 절대적 객관성의 대립을 지양하려는 철학적 신념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그의 사유 체계의 근본적 토대를 형성한다(Hegel, 1970a, 21).
따라서 절대자는 모순과 갈등 그리고 이를 지양하는 성장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가령 지적 직관을 통해 직관만으로 모순과 갈등의 과정을 생략하여 절대자를 파악할 수 있다거나, 대상 분석을 통해서 분석된 대상을 종합하는 경험주의적 접근은 한계가 있다. 헤겔은 절대자를 의식의 대상이 대상과의 모순과 모순의 지양을 거쳐 더 높은 인식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으며, 스스로 “회의와 절망의 길”(Hegel, 1952, 67)이라고 부를 만큼 각고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왜 의식은 반드시 절망의 길을 거쳐야 하는가? 굳이 절대지의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감각적 확신이나 지각 등 오성의 수준에서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회의와 절망을 거쳐 절대지의 단계에 도달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 본래면목을 발견하려면 반드시 이러한 위험한 여정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완성품이 아니며 오히려 회의와 절망의 과정을 거쳐서만 느낄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식은 처음부터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절대지에 이르기 전에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의심과 회의에 머물 뿐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 헤겔은 인간의 본래면목을 발견하고 품격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바로 그러한 인식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저술이다. 특히 “의식의 경험의 학”과 “정신의 현상학”은 인식과 존재 문제를 논의할 때 반드시 검토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구조이다.
“정신의 현상학”은 논리적인 이념으로서 의식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며 이 논리에서는 의식이 이미 정신이고 절대자이다. 논리적 의식의 형태로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절대지의 관점을 미리 보여준다. “의식의 경험의 학”은 의식이 실제로 겪는 경험과 인식의 방법을 의미한다. 이 두 학적 방법은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헤겔은 이를 정신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에 대립하는 타자가 되며 이 타자를 다시 지양해 자기 자신으로 반성하는 운동, 즉 자기 소외와 자기내 반성의 운동으로 설명했다(Hegel, 1952, 32–33).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 의식의 경험의 학과 정신의 현상학은 관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즉 의식의 경험의 학과 정신의 현상학은 경험의 관점과 논리적 관점의 차이일 뿐, 어느 한쪽이 더 우열하다 할 수 없는 내용과 형식처럼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칸트의 말처럼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고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이다”는 명제는 철학적 사유의 근본적 긴장을 보여준다(Kant, 1974, A51/B75).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식의 경험의 학이 결여된 정신의 현상학은 공허하고, 정신의 현상학이 결여된 의식의 경험의 학은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인생의 공허함과 맹목성을 극복하려면 이 양자의 상호관계가 필수적이다. 결국 의식과 정신,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은 고집과 고집의 자기모순이 인식 성장의 논리적 계기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신철학에서는 개별적 인간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은 세계정신으로서의 이성이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수단처럼 여겨진다.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은 세계정신의 필연적인 논리에 비하 우연하고 비중 없는 존재로 보이기 쉽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적인 개인도 그 임무가 끝나면 결국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영웅의 고집과 의지는 세계정신의 실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희생이자 동시에 자기 실현의 계기가 된다. 물체의 실체가 중력에 있듯 이성의 실체는 자유에 있으므로 세계사는 “자유 의식의 진보”(Hegel, 1970d, 32)라는 헤겔의 역사철학 명제처럼 개인의 희생과 자기실현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헤겔은 역사를 자유 의식이 발전해 가는 과정으로 규정하고, 그 발전 단계를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① 한 사람만이 자유로웠던 동양의 전제정치 단계. ② 소수인만이 자유로웠던 그리스 로마 정치 단계. ③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게르만적인 입헌군주제 단계(Hegel, 1970d, 31–32), 특히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입헌군주제 사회는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
세계정신의 실현을 위해서는 “이념”과 “인간의 경험”이라는 두 계기가 필요한데, 헤겔은 이를 양탄자의 날실과 씨줄에 비유했다. 세계사는 이 두 계기가 각각 양탄자의 “날실”과 “씨줄”처럼 서로 매개되고 통일되어 전개된다는 것이다(Hegel, 1970d, 38). 세계사는 영웅과 같은 세계사적 개인의 열정과 노동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도 과업이 끝나면 알렉산더처럼 요절하고, 카이사르처럼 살해당하며, 나폴레옹처럼 세인트헬레나로 유배되는 등 결국 알맹이 없는 빈 껍질처럼 몰락한다(Hegel, 1970d, 47). 평범한 사람의 운명처럼 영웅도 언젠가 낙엽처럼 떨어져 한 줌의 재가 된다. 반면 세계정신과 같은 보편적 이념은 훼손되지 않고 그 배후에서 영속한다.
헤겔은 세계정신과 개인의 불평등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이성의 간계”(List der Vernunft)라는 개념을 사용했다(Hegel, 1970d, 49). 이성의 간계란 역사의 과정에서 세계정신이 자기 자신이 아닌 개인의 열정을 이용해 자신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영웅의 열정은 도구가 되어 소임을 다하지만, 세계정신은 희생없이 스스로를 실현한다. 그러나 영웅 역시 역사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기실현에 도달한다.
역사의 필연성과 자유의 긴장은 세계정신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서, 이성과 열정의 교차를 통해 역사 전개와 시대정신의 발현을 설명하는 헤겔 역사철학의 핵심적 딜레마로 드러난다. 특히 헤겔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영웅들의 고집스러운 자기확신에서 발견하면, 이를 통해 개인적 의지와 보편적 정신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강조했다. 그의 명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Hegel, 1970c, 24)와 “존재와 무의 변증법”(Hegel, 1970b, 82–83)은 철학적 사유의 보편 원리를 제시한다. 이는 고집스러운 철학자가 남긴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명제 중 하나가 되었다.
니체는 키에르케고르와 달리 인간의 실존적 한계 상황을 신이 아닌 자기 자신의 초인적 의지로 극복하고자 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보다 오히려 니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 고집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인은 극단적인 고집의 의지와 다르지 않으며, 니체가 초인이라는 극단적인 인간상을 제시한 이유는 가치 전도, 즉 허무주의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니체는 허무주의(nihilism)를 최고 가치 상실, 즉 신과 도덕의 권위가 더 이상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상태로 규정했다(Nietzsche, 1993, 31). 여기서 ‘최고 가치’란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 규범을 뜻한다. 신, 도덕, 권위와 같은 가치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의심을 받게 되면, 그 권위는 유지될 수 없고 이에 의존해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 자체가 부정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카당스, 아나키즘, 이율배반 등 부정적 개념들이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절대적 권위의 상실을 허무주의로 볼 때, 허무주의는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고집할 대상을 잃은 인간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되고, 니체는 이 과정을 근대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비판하는 가운데 “수동적 허무주의”와 “능동적 허무주의”로 구분했다. 수동적 허무주의는 “정신의 권력의 쇠퇴와 후퇴로서의 허무주의”로 극도의 피로와 나약함으로 어떤 신앙도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능동적 허무주의는 “정신의 권력 상승의 징후로서의 허무주의”로, 기존 가치 체계를 파괴하는 힘을 통해 번창과 성장, 힘의 획득을 추구하며, 신앙을 넘어선 극단적 힘을 지향한다(Nietzsche, 1993, 40). 따라서 니체의 허무주의의 의의는 단순히 수동적 허무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근대사회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번창, 성장, 힘의 획득을 지향하는 능동적 허무주의가 과연 ‘허무주의’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허무주의는 본래 최고 가치의 박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최고 가치가 상실된 상황에서는 번창과 성장, 힘의 획득이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긍정적 의미에서의 허무주의는 기존의 허무주의 개념과 다르며, 새로운 가치 창조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를 통해 보여주듯, 절대적 가치의 붕괴 이후 나타나는 가치전도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니체 철학의 방법은 기존의 낡은 허무주의를 전복하고, 능동적 허무주의를 새로운 가치로 창조하는 데 있다. 그의 사유의 핵심은 가치전도이며, 가치전도는 창조 행위이자 진리를 구성하는 힘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만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로 인정된다.
니체는 데카당스를 가치 전도와 가치 창조의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데카당스는 보통 퇴폐, 퇴락, 폐물 등 전통을 부정하는 퇴폐주의로 이해되지만, 그는 오히려 데카당스를 퇴폐적이라고 해서 삶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필연적 계기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았다(Nietzsche, 1993, 48). 그 이유는 데카당스적 요소들의 불가피성 때문이다.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악덕, 질병, 범죄, 매음, 곤궁 등 사회적 병폐가 사라지지 않은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오히려 삶을 단죄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의로운 사회란 악이 없는 사회가 아니라 악과 병존하는 사회라는 점이 니체 허무주의 담론의 핵심이다.
따라서 가치전도의 대안으로 등장한 초인은 어떤 고정된 인격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잠시라도 창조를 멈추면 더이상 초인이 아니기 때문에 초인은 돌을 굴려 산으로 올려야 하는 시지포스와 같은 수인이다. 초인은 고집이 극단에 달한 존재이지만 고집을 피우는 순간 더 이상 초인이 아니므로 실상 고집을 고집하지 않는 자이다. 초인은 근대인의 집착과 근대사회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의 아이콘이다. 뢰비트의 말대로 초인은 인간의 척도를 혼란스럽게 하는 인간주의, 세속화된 기독교의 인간주의, 그리고 나약한 본능의 퇴화로서의 인간주의에 대한 비판의 결과였다(Löwith, 2006, 404–405).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Nietzsche, 2021, 136) 죽은 신의 자리에 등장한 초인은 기존 가치와 완전히 다른 가치 속에서 살아야 한다. 초인은 창조자이자, 가치를 판단하고 경멸하는 자이며, 그 때문에 고독하다. 초인의 첫 번째 과제는 인간의 자기극복이다. 초인은 인간의 외부에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데우스가 아니며. 인간 자신의 나약함과 인간주의를 극복할 때 비로소 등장한다.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Nietzsche, 2021, 15) 니체는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위험하게 살아야 한다고 보았다. 안락한 삶은 오히려 위험하며, 위험하게 살아야 초인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줄타기 광대처럼 광대처럼 위험 속에서만 의미가 존재하는 인간에게는 행복, 미덕, 정의, 교양, 동고 등 기존 인간주의 관념이 관념 전체가 더 이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Löwith, 2006, 405).
인간은 마치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줄타기 광대의 밧줄과 같은 존재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며 멈춰 서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 위험하게 산다는 것은 줄타기 하는 광대의 신세와 같다. 초인은 도달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영원히 건널 수 없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그래서 니체는 초인을 대지에 비유하며 초인이 되려는 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희생하는 자”, “인식하기 위해 살며, 언젠가 초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인식하려는 자”, “자신의 미감과 운명을 만들어 내는 자”, “자신의 운명을 낭비하는 자”, “다가올 미래의 세대를 옹호하고 인정하며 징벌하는 자”, “상처를 입어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으며 작은 체험에도 멸망할 수 있는 자”, “자기 자신을 잊은 채 만물을 자신 안에 간직할 만큼 그 영혼이 넘쳐흐르는 자”, “자유로운 정신과 자유로운 심장을 가진 자”(Nietzsche, 2021, 19–20).
초인은 위험과 희생, 상처와 영혼, 운명과 자유를 견뎌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존재다. 초인은 기존의 가치를 전도하고 창조하는 자다. 초인의 관점에서 행복은 생존을 긍정하지 못하는 공허한 개념이며, 덕 역시 악을 전제로 하기에 빈곤하다(Nietzsche, 2021, 16–17). 니체는 초인을 몸을 중시하는 존재로 설명한다. 초인에게 영혼은 몸의 표현이고, 이성은 몸의 도구이며, 자아 역시 몸속에 존재한다고 본다(Nietzsche, 2021, 50–51). 초인은 행복, 도덕, 지식, 영혼 등 전통적 가치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안일함을 “번갯불”과 “광기”로 경멸한다(Nietzsche, 2021, 18).
니체는 초인이 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삶의 태도뿐 아니라 고독과 자유로운 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직 고독한 자만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멸망과 창조를 경험하며, 시장과 군중을 벗어나 절대적 고독 속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고독한 자여, 그대는 그대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고 있다. … 그대는 자신에게 이단자가 될 것이며, 마녀, 예언자, 바보, 의심하는 자, 성스럽지 못한 자, 악한이 되리라.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꽃으로 스스로를 불태우려고 해야 한다. 우선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거듭나기를 바라겠는가!”(Nietzsche, 2021, 111)
고독은 많은 철학자들에게 사유와 영감을 제공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예를 들어 스피노자는 세상과 거리를 두고 고독 속에서 철학을 탐구했고, 퇴계 이황은 관직에서 물러나 서당을 세우고 독서와 사색에 몰두하며 고독을 삶의 방식으로 삼았다. 정약용 역시 18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을 통해 고독 속에서 학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니체의 고독은 이와 같은 전통적 의미의 고독과는 다르다. 그는 ‘고독의 철학자’라 불릴 만큼, 자기 존재를 소진하고 재로 환원된 뒤 다시 태어나는 과정으로서의 고독을 강조했다. 이것은 단순한 수동적 체념이 아니라, 자기 전부를 바치는 능동적이고 극단적인 행위였다. 니체에게 있어 이러한 고독은 초인 철학과 직결되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실존적 조건이었다.
니체는 고독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발견했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신은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지닌 어린아이의 정신이다. 정신은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세 단계로 변화한다. 낙타는 무릎을 꿇고 무거운 짐을 지는 체념, 복종, 인내심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는 노예의 도덕처럼 창조적 삶과 가장 거리가 먼 단계이다. 사자는 낙타와 달리 자유롭게 주인이 되고자 하는 정신의 단계지만, 그 자유도 명령이나 당위에 따라 추구되기에 내적 자유에는 이르지 못한다. 어린아이는 사자와 달리 자유와 가치 창조를 순진한 놀이로 여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 성스러운 긍정”으로 가장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다(Nietzsche, 2021, 36–38).
힘에의 의지는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된다. 특히 초인처럼 창조하고 판단하며 개척하고 주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가 된다. 이 의지를 통해 근대사회의 모순인 허무주의나 데카당스를 극복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는 의식의 경험에서 나타나는 회의와 절망처럼 극단적 자기극복 의지의 형태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과도 비교된다. 주인의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Stern, 1998, 120–121).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인간의 욕망이 타자의 인정을 얻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으려면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고 상대 역시 자신의 욕망을 인정받기 위해 타자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인정을 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지만, 인정은 죽음을 통해선 얻을 수 없고 생존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결국 자아와 타자가 상호 인정하는 관계로 전환된다. 한 쪽은 인정을 주는 존재, 다른 한쪽은 인정을 받는 존재로 정리된다. 주인의식과 노예 의식은 이렇게 성립된다.
힘에의 의지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모두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힘이 인간을 소외되고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현실의 모순과 소외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됨을 강조하며, 이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두 방법은 길과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창조적으로 극복하고 더 높은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승화하려는 목표는 동일하다.
니체는 ‘고집’이라는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초인(Übermensch) 철학은 고집의 문제와 그 극복 방식에 대해 암시한다. 초인을 지향하는 인간에게는 반드시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는 모든 가치가 무너지는 허무를 견디고, 자기 부정을 통해 죽음조차 불사하는 과정에서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불굴의 의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타의 굴종이나 사자의 자신감조차 어린아이의 순수성 앞에서는 한계를 가진다. 결국 인간이면서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초인에 도달하려는 존재는 고집을 단순한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초인에 이른 단계에서는 고집에 더 이상 매이지 않고, 오히려 고집을 절대적 고독 속에서 순화하여 순수한 의지로 전환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니체의 ‘고귀함’의 철학은 고집을 순화해 성자의 덕성으로 승화시키는 원천이 된다. 그는 영혼을 밤에서 아침으로, 혼탁과 고뇌에서 밝고 섬세한 것으로 이끄는 욕정과 갈망을 오히려 고귀한 경향으로 보았다(Nietzsche. 2013, 296–297).
고집은 인간 의지의 한 형태다. 고집은 불통의 이미지를 강하게 주어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여러 철학자들에게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과 학문을 세우는 원동력이 되어 오히려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요소 작용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철학자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이 남긴 고집의 철학에서 삶을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고집은 철학자에게는 철학 체계 수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정치인이나 사업가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도자는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 타인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한 소통을 통해 공감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처럼 고집은 인간의 극단적인 의지의 표현이자, 자기 성장을 촉진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헤겔과 니체의 의지의 철학 그리고 동서양 사상가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고집을 자기 성장의 동력으로 삼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외부의 기준이나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삶의 방향을 설정했다. 타인의 기대나 관습에 타협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을 따라 살아갔다는 점에서 이는 자율성과 진정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사색과 독서를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깊은 성찰과 내면 탐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확장한다. 책은 단순한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묻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철학적 동반자가 된다.
셋째,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기존 틀이나 관습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고 실천한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르기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독한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삶은 삶은 창조적 실천의 연속이다. 이는 단순한 독립적 선택을 넘어, 내면의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 용기와 철학적 태도를 보여준다.
넷째,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닫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고집스러운 철학자들이 자기 고집만을 내세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소통을 학문적 완성의 방법으로 삼았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퇴계와 고봉의 편지글처럼, 이들은 대화와 편지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정교화하고, 활발히 교류했다.
본 연구는 ‘고집’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맥락에서 조명하고, 그것이 인간 의지의 본성과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헤겔과 니체의 사유를 통해 분석하였다. 고집은 단순한 성격적 완고함을 넘어, 자아의 정체성과 철학적 사유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의지의 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헤겔의 자기의식 개념은 고집이 타자와의 긴장 속에서 자아를 정립하는 과정임을 보여주었으며, 니체의 허무주의는 기존 가치에 대한 고집을 극복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고집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긴장과 맞닿아 있어, 자아의 지속성을 위한 방어적 태도이자, 동시에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변화와 초월을 요구받는 역동적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철학자들의 고집은 단순한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그들의 사유가 직면한 시대적·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기능하였다.
결국 고집은 인간 의지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고집은 자아를 지키려는 힘이면서, 그 자아를 넘어서는 도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본 논문은 고집을 통해 인간 의지의 복합성과 철학적 가능성을 탐색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향후 연구에서는 고집이 윤리적 판단, 사회적 관계, 정치적 신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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